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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study/Book Review

수필로 그려낸 공간 이야기 - 「디자인 좀 하십니까」(노성진) 리뷰 -

수필로 그려낸 공간 이야기

- 「디자인 좀 하십니까」(노성진) 리뷰 -




디자인 좀 하십니까

저자
노성진 지음
출판사
멘토프레스 | 2013-04-19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디자이너 노성진의 디자인과 삶 이야기!『디자인 좀 하십니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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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시청이나 구청 건물만 봐도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웅장하고 멋진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냥갑을 세워놓은 듯 획일적이고 단순했던 아파트도 원형으로 짓기도 하고 녹지공간과 보트장까지 갖추는 등 친환경적인 동시에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려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건축디자인이라는 것이 이제는 튼튼하고 효율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고 자연을 생각한다. 

 

「디자인 좀 하십니까」(노성진).

이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딱딱한 시멘트로 지어진 그 무엇인가가 아닌 공간에 담긴 지난 시절의 추억과 문화의 가치, 의미들을 수필형식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베테랑 공간디자이너이다. 여러 권 책도 썼는데 문장력이 대단하다. 건축일을 하는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감성적이다.

 

「디자인 좀 하십니까」(노성진, 멘토프레스, 228쪽, 2013)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디자인 좀 하십니까」(노성진)는 공간디자이너인 저자가 자신의 전문분야인 건축과 공간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수필체로 편안하고 부드럽게 표현해낸 책이다. 경어체를 사용하여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이 드는 동시에 전문가로서의 그간 쌓아온 경험과 날카로운 시각, 방대한 자료가 돋보이는 책이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이야기인만큼 사진이 들어갔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러한 아쉬움을 글로써 채워주었다.

 

(출처: 인터파크)

 

:: 제1장 정서로 말하는 디자인

시멘트 범벅으로 바뀐 용담천의 이야기, 저자의 작업실 이야기, 크로키 초상화 개인전과 축제 이야기 등이 담겨있다. 자신의 일을 통해 경험하고 깨달았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소탈하게 표현했다. 건축이라는 것이 단순히 일과 삶을 위한 공간이 아닌 추억과 의미가 담겨 있는 곳, 자연과 인간을 모두 품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완곡한 저자의 항변이 이야기 곳곳에 깔려있다.

 

:: 제2장 도시문화를 선도하는 디자인

'도시는 창문으로 시대를 말한다'에서는 다양한 '창'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디자인 기술이냐, 예술이냐!'에서는 디자인에 대한 담론이 펼쳐진다. '집, 아버지, 도시적 추억'은 싸이의 '아버지'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연상되는 일러스트와 정감어린 글들이 가득하다. '흔적을 파는 도시들'에서 다루고 있는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는 사뭇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전체적으로 공간디자이너로서 저자의 해박한 경험과 지식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 제3장 디자인의 사회이슈

건축과 공간디자인에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바로 '위험에 빠진 교회건축'이다. 크리스천인 저자가 기독교를 단순히 옹호하는 입장이 아니라 솔직하게 털어놓고 고백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저자 스스로가 재능기부를 하고 있기에 '디자인으로 재능을 기부하는 사회'는 더욱 가슴에 와닿는다. '싱글 도시학', '디자인 다중노동의 대가',  '집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등은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 제4장 지방자치제에서 디자인은 무엇인가

지자체와 디자인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다룬 장이다. LED조명을 바라보는 지방자치단체의 시선이 소개되고, '국민배우', '국민가수'는 있는데 국민고향은 왜 없을까에 대한 색다른 질문이 던져진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이뤄낸 세계적인 성과 속에서 서울의 '강남'에 대한 역사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제시된다. 마지막으로 지방자치시대에서의 도시디자인 실태와 문제점, 그 해결방안 등을 소개한다. 

 

 

아쉬운 점들

 

-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책을 읽다보니 책의 제목이나 주제와 동떨어진 글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예를 들어 '삶은 축제다, 연대다, 품실제를 보라'(pp.51~58), '장예모 감독과 생산적 컬처파워'(pp.105~109), 'TV를 꺼야 하는 이유'(pp.135~138) 등의 글은 글 어디에도 건축이나 공간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내용은 상당히 좋다. 특히 TV 없애기는 TV를 없앤 우리 가정만 보더라도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TV 빼기를 시도해온 저자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하나의 이유로 전체 주제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공감할 수 있고 건축과 공간디자인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지만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본문의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책의 주제와 동떨어진 것이라면 마냥 박수를 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 디자인과 수필 사이 어디에서

처음 이 책을 접하고 리뷰를 해야할 지 망설였다. 건축이나 디자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디자인을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다는 어느 분의 글을 보고 리뷰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은 디자인에 관련된 책이라기보다는 건축과 공간디자인을 이야기하는 수필집에 가깝다. 삽입된 일러스트도 그렇고 저자의 문체도 그러하다. 잔잔한 감동과 추억, 의미를 되살려주는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렇다면 각 장과 소제목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보다 구체적인 삽화로 표현되었어야 한다. 물론 전체적인 디자인을 봤을 때 컬러사진이 들어갈만한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 삽입된 그림들은 좀 아니다싶다. 만화적인 요소가 강한 느낌이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봤을 때, 세밀한 스케치 형식의 그림들이 들어갔더라면 디자인과 수필 사이에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출처: 인터파크)

 

 

놓치기 아쉬운 문장들

 

당신은 감옥에 살고 있다. 내가 곧 감옥이다! _p.17

 

낮은 자리의 여유로움보다 높은 자리의 위태로움을 성공이라 믿는 우리

사색하는 오감보다 검색하는 직감으로 사는 우리

밤하늘의 별빛보다 발광다이오드를 보고 사는 우리

자연의 시간보다 생각의 시간으로 사는 우리

지금 그대가 내 곁에 서 있습니다. _p.31

 

상상의 결정체가 바로 디자인이다. 디자인은 외관이 아니라 영혼이다. 기업의 가치를 반영하며 삶과 사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꿔주기도 한다. _p.71

 

디지털의 빠름이 아날로그의 사색과 기다림의 인내를 지배한다는 데는 이견을 내세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의 아름다운 합체는 새로운 인류의 창조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믿어보고 싶습니다. _p.83

 

물이 흐를 수 있는 여유공간이 없다면 그 계곡은 말라버릴 것이며 생장하기 위한 여유가 없다면 생성발전은 정지된다. _p.117

 

Turn off TV - Turn on Life! TV를 끄고 삶을 바꾸자! _p.136

 

재능기부는 참으로 아름다운 문화입니다. 하지만 재능기부를 무보수의 대안으로 몰아가는 사회적 분위기는 금물입니다. 재능기부는 순수한 마음으로 임해야 그 가치와 진가를 발휘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_p.139

 

 

(출처: 인터파크)

 

 

마치며

 

'건축가'라고 하면 보통 딱딱하고 거친 느낌이 있지만 동시에 '예술가'라는 이미지도 그려진다. 그러한 양면성을 잘 보여준 것이 바로 이 책 「디자인 좀 하십니까」이다. 공간디자이너로서의 건물과 도시,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전문가적 시선, 하지만 결코 거칠거나 메마르지 않은 풍부한 감성과 서정성이 어디 하나 모나지 않게 멋지게 조화를 이룬 책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들이 100% 표현되지 못한 것 같아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어체 속에 숨겨진 저자의 공간디자이너로서의 해박한 지식과 자료들은 건축분야는 물론이고 시와 소설, 영화에서부터 정부정책 등 아주 광범위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되어 있어 책을 읽는 재미가 있다. 그래서 보는 재미가 부족한 것이 더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하지만 장동건이 허름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한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처럼 이 책은 저자의 글 하나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광채가 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인터파크)

 

 

 


 

 

 

수필로 그려낸 공간 이야기 - 「디자인 좀 하십니까」(노성진) 리뷰

calamis

(http://calamis.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