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eize the day!/영화·공연·전시

내 청춘이 응답하다 - <응답하라 1994>를 보고

 

 

내 청춘이 응답하다

<응답하라 1994>를 보고

 

남기고 싶다

 

 

 

"아직도 안 봤어? 하~참."

지금은 좀 한풀 꺾였지만 얼마 전에까지만 해도 인터넷 뉴스고 스마트폰이고 간에 온통 <응답하라 1994> 이야기뿐이었다. 쓰레기, 칠봉이, 삼천포, 빙그레, 해태 등 알 수 없는 의미의 이름들이 헤드라인을 도배하기 시작했고 매직아이, 티피코시, 씨티폰 등 추억을 새록새록 돋게 하는 아이템들이 언급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하도 재미있다고 말하길래 한꺼번에 보게 되었다. 그냥 재밌다는 생각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재미 이상의 무언가 뭉클함이 있었다. 그게 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글로 남겨 다시 추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으다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20여년 전의 이야기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기에 마치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약간의 어색함은 있지만 자연스러운 사투리 연기들, 도희의 기름칠한 듯 쏟아져 나오는 사투리욕도 맛깔나다. 나정이와 삼천포의 코믹연기도 놓치기 아깝다. 도희와 김성균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고속터미널 씬은 감동 그 자체였다. 전체적으로 출연진의 연기도 너무 자연스럽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었다. 1990년대 초에 그랜져HG가 굴러다니고 있었고 여기저기 옥의 티가 있었지만 극의 흐름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음악들, 소품들, 뉴스들이 더 강한 임팩트를 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 가운데 흐르는 러브라인의 긴장감, 타임슬립은 아니지만 현재와 과거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연출자의 능력이 참 대단하다.

 

중간중간 너무 지루하게 끌고 가는 장면도 있어서 극에 몰입을 방해했지만 90분 분량의 드라마를 이끌고 가려면 그 정도는 이해할 만하다. 특히 결혼식 녹화테이프를 보면서, 오랜만에 모인 하숙집 친구들의 모임을 통해서 과거의 에피소드들이 하나씩 전개되는 모습이 더 가슴이 저려오기도 했다. 막장드라마도 아니었고 진부한 러브스토리도 아닌, 정말 그 시대를 살아온 내가 겪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이었기에 어느 새 내 이야기라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어느 새 20년이 넘어버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말이다.

  

 

 

추억하다

 

1994년, 그때 나는 뭘 하고 있었나 자꾸 생각하게 되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IMF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이고 충격에 잠겼을 때에도 나는 나와 직접적인 상관이 없었다고 그냥 남의 이야기로 흘리듯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처럼 가슴아픈 취업의 실패도 없이 졸업과 동시에 신입사원 연수를 갔고 동기들 가운데 가장 높은 연봉을 받으며 취직을 했기에 더더군다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그 회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시간들을 아쉬워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 당시의 소품을 준비하고 고증을 하는데 상당히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컴퓨터 한 대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찾기도 했단다. 그래서일까, 정말 그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나 배경음악 역시 요즘의 아이돌이나 걸그룹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온다. 가사 한 절 한 절이 마치 그때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것같다. 드라마를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재미와 감동, 추억과 사랑을 다시금 생각나게 해주었다. 물론 그것이 '좋았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내 청춘이 응답하다 - <응답하라 1994>를 보고-

calamis

(http://calamis.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