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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study/Book Review

진실인가 착각인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

 

진실인가 착각인가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저자
줄리언 반스 지음
출판사
다산책방 | 2012-03-2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11 영연방 최고의 문학상 맨부커상 수상작!2011 영연방 ...
가격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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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터파크)

 

 

 


 

 

 

마치며

 

유학을 하느라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시간들은 여전히 내게 독특한 시간으로 남아 있다. 한국에서의 시간들 가운데 단절되어 있었던 시간, 그러나 너무나도 소중하고 행복했던 시간. 혼자라 외로움에 힘겨웠던 기억도, 그러면서도 같은 또래끼리 서로 위로해주며 힘이 되었던 참 소중했던 시간이다.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의미있는 몇몇 사람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러던 어느 날, 몰래 숨겨두었던 그 날들의 일기장을 펼쳐보게 되었다. 새록새록 기억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이런 적이 있었나?'라고 할 정도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일들도 많았다. '내가 이 사람을 이렇게 생각했었나?', '어, 이게 아닌데?' 하는 내용들도 보였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썼던 일기장을 들춰 볼 때면 내 일기장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리고 우연히 꺼내보게 된 학창시절 성적표는 내게 충격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기억의 왜곡 속에 살아간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은 삭제한다고도 한다. 나의 행동이,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어떤 상황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는 경우도 있다. 정말 그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는 것 같다. 그 종류와 크기가 좀 다를 뿐, 우리는 이와 같은 일들을 대부분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줄리언 반스)는 바로 그러한 우리의 착각과 사고의 왜곡, 그리고 인간의 조건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은 영국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는 줄리안 반스가 쓴 스릴러로 영구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맨부커상 2011년도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상의 심사위원장이었던 스텔라 리밍턴은 당시 시상식장에서 이 책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깊이를 드러내는 명작이며 영문학의 고전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그러한 말들이 내게도 적용되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때마침 얼마 전 KBS <TV, 책을 보다>라는 프로그램에 이 책이 소개되었다. 간단한 줄거리가 만화 형식으로 소개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 책의 내용을 연애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여 김지윤 좋은연애연구소 소장이 등장하여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인간의 기억과 그 왜곡,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사유를 다루는 깊이 있는 책인데 남녀간의 연애라는 차원에서 다소 가볍게 다룬 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저자인 줄리언 반스는 옥스퍼드대학교에서 현대언어를 전공했으며 1969년부터 1972년까지 [옥스퍼드 영어사전] 증보판을 편찬했다. 그래서인지 언어구사력이 남다르다. 번역이라는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느껴지는 깊이가 다르다. 특히 대화체에서 두드러진다. 원문을 기준으로 150페이지 분량의 경장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자는 '수많은 독자들이 나에게 책을 다 읽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읽었다고 말했다. 고로 나는 이 작품이 삼백 페이지짜리라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러 사람의 리뷰를 보니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난 후 책을 덮은 것이 아니라 맨 앞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을 많이 했다. 자기계발서나 경제경영서들을 보면 한번 쭉 읽고 마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소설, 특히 추리소설과 같으 장르는 사건의 전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중간중간 다시 읽어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 소설은 특히 그런 경향이 강하다. 나 역시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시 앞으로 가서 확인하는 작업을 거치고야 말았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토니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 즉, 에이드리언, 베로니카,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와의 관계 등을 통해 현재와 40년 전 과거를 되짚으면서 드러나는 진실들이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학창시절에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에이드리언의과의 만남에서부터 그의 자살까지 과거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부로 넘어오면서는 40년의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주인공 토니 앞으로 배달된 에이드리언의 유품을 받으면서 일어나는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토니는 에이드리언의 자살과 베로니카와의 만남,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의문들을 풀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이 무심코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엄청난 결과들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에 대해 에이드리언이 라그랑주를 인용해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은 이 책 전반에 흐르는 저자의 생각들을 대변해준다고 볼 수 있다. 허태균 교수의 「가끔은 제정신」이라는 책을 보면 프롤로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

많은 것이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착각하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이 착각하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그 착각을 계속하긴 어렵다.

반대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이 착각이라 밝혀질 때까지,

모든 믿음을 진실로 착각하며 살아간다.

 

모든 기억을 100% 온전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번쯤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책은 나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가상의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나에게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 그래.'라고 말하는 듯 하다. 그리고 정말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출처: 인터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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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lamis

(http://calamis.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