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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study/Book Review

가끔은 제정신 (허태균) 리뷰

어쩌면 모든 것이 착각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제정신」(허태균)

 

지난 주, 30년 지기 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당역으로 갔다. 경기도에서 오는 친구와 잠실에서 가는 내가 중간에서 만나기 가장 적합한 장소이기에 항상 그 곳에서 만난다. 그래서 사당역의 한 대형서점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친구나 지인을 만날 때 약속장소로 서점만큼 좋은 곳은 없는 것 같다. 조금 일찍 가서 책도 보고 혹시나 친구가 늦어도 책을 보고 있으면 되니 기분이 상할 일도 없었다. 친구가 도착할 무렵 막 나가려는데 계산대 옆에 도배를 하다시피 전시되어 있는 책이 한 권 있었다.

 

「가끔은 제정신」(허태균, 2012, 288쪽, 쌤앤파커스)

 

표지가 다소 우울해 보여서 집을까 말까 고민했던 책인데 얼마나 자신이 있길래 출판사에서 이토록 엄청난 광고를 하는지 궁금해서 책을 집어 들었다. /우리는 늘 착각 속에 산다/는 부제가 붙어 있는 「가끔은 제정신」은 고려대학교 심리학과 허태균 교수가 지은 책이다.

 

- '나는 절대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우리

이 책은 생활 속에서 항상 접하게 되는 여러가지 착각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착각 속에 살고 있는지, 그러면서 '나는 절대 착각하지 않는다'는 심각한 착각 속에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상당히 똑똑하고 당연히 SKY대학에 갈 거라는 착각(물론 나중에 현실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산 복권은 당첨확률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높다는 착각, 한국 축구는 4강에 갈만한 실력이 충분하다고 믿는 착각 등.

 

각 챕터의 맨 앞 부분에 삽입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그림들이 이 책의 흐름을 대변해준다. 하나씩 따라가면 분명 맞는 그림인데 전체를 놓고 보면 말도 안되는 그림들. 일상 생활 속에서 한 마디 한 마디 듣다보면 분명 맞는 이야기들인데 전체적으로 객관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말도 안되는 착각들, 그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이 불편한 진실.

 

저자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나 역시 천동설과 지동설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진리라고 믿었던 천동설이지만 지금은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만 이야기. 지금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각종 사진과 동영상을 통해 지동설에 대해서 누구도 의심하고 있지 않지만 어차피 내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이 역시 먼 훗날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미국이 달에 착륙했다고 아무 의심없이 믿었지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인해 그것이 꾸며진 것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현실. 과연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은 정말 진실인 것일까, 다시금 의심해본다.  

 

 

- 그림 하나 없어도 지루하지 않은 책

챕터 맨 앞 외에 본문에는 그림 하나 들어가 있지 않다. 간혹 예로 들은 설문지 몇 장만 들어 있을 뿐 빡빡하게 텍스트만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다. 저자 특유의 유머감각과 현실적인 감각이 책 여기저기에 묻어난다. 저자 자신과 가족, 주변 사람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스스럼 없이 이야기 하는 모습(특히 단점을 이야기할 때)이 묘한 친근감을 갖게도 한다. 한 장의 글을 마칠 때마다 위트와 유머, 현실감각이 넘치는 멘트로 살짝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

 

조금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장 중간중간에 들어 있는 '그래서..'라는 코너. 과감하게 노란색 바탕으로 처리해서 눈에는 잘 들어오지만 왠지 부담스럽다. 각 장의 제목에도 노란색의 밑줄이 그어져 있고 각주에도 노란색 배경이 들어가 있다. 다른 곳에서는 잘 보지 못했던 독특한 편집이다. 그래서인지 눈에는 잘 들어온다. 편집자가 그걸 노렸다면 일단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전체 배경까지 노란색으로 처리한 건 좀...

 

- 우리가 수많은 착각 가운데 살고 있음을 일깨워 주는 책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자신의 전공분야인 심리학을 이용한 착각의 원리와 그 실험사례를 말한다. 하지만 그러한 착각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 스스로 착각에 빠지지 않게 하거나, 이미 빠진 착각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다만 책 말미에 "하지만 단 한 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남았따. 바로 남의 말을 들어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가 원했던 것은 '혹시 내가 틀린 것 아냐? 착각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

내가 무조건 옳다 하는 '착각'이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렇고 가까이는 부부간에, 부모자식간에도 그렇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열린 생각이 상대방을 조금 더 이해하게 하고 배려할 수 있게 한다. 수십년간 무의식 가운데 믿어 왔던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방식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충격을 딛고 일어날 때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막혀 있는 듯한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줄 것이다.

 

그렇지않아도 요즘 내 인생을 돌아보면서 조금은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 바로 이런 착각에서 온 거라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고 답이 되는 것 같다. 무조건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일어나는 모든 불편한 현실의 원인을 타인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그 화살을 내게로 돌릴 때 오히려 삶의 문제들이 하나씩 쉽사리 풀려갈 것이다. 서점에서 이 책, 「가끔은 제정신」을 집어 든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calam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