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그리고 일침
- 「일침」(정민) 리뷰 -
우리는 놀라운 기술의 발전 속에 하루를 살아간다. 지구반대편에서 일어난 일들이 내 손바닥 만한 액정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펼쳐지는 모습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내가 오늘 하루종일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CCTV를 조금만 찾아보면 쉽게 알아낼 수도 있다. 경조사를 핑계로 친구와 술한잔 기울이다가는 위치추적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통해 금방 들통나는 그런 시대다. 편리하고 빠르고 재미있는 세상, 하지만 그만큼 그로인해 잃어가는 것도 많은 세상이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조금은 불편하되, 여유있고 조용한 마음의 묵상으로 일침을 가하는 책 한권이 있다.
「일침」(정민, 294쪽, 김영사, 2012)
- 일침,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다
우리는 '최첨단을 걷는다', '첨단산업', '첨단기술' 등 '첨단'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첨단'이란 '물체의 뾰족한 끝', '시대 사조, 학문, 유행 따위의 맨 앞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네이버사전 참조). 보통 바늘끝을 말하기도 하는데 그만큼 발전된 기술과 고도의 과학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우리는 바로 그런 바늘 끝과도 같은 고도의 기술이 일상생활에 널리 활용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만큼 아슬아슬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 「일침」의 부제는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이다. 우리는 혼탁하고, 진흙과 먼지 구덩이와도 같은, 관이 꽉 막혀 모든 것이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 저자는 그런 우리들에게 막힌 혈을 한 방에 뚫어주는 바늘 끝과도 같은 그 일침을 가한다. 그것도 거창하지 않지만 깊고도 깊은 4자성어로 말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앞뒤 가릴 것 없이 달아나기만 하는 우리네 마음을 되돌리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레 써내려간 흔적들이 보이는 듯하다.
- 바늘 끝에 사는 우리, 그 끝에 찔린 우리
이 책은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 스스로가 표현한대로 '오래 아껴 만지고 다듬었던 글들'이다. 이전에도 저자는 박지원의 산문, 18세기 지식인, 옛 글 속 선인들의 내면 등에 대해 다룬 책들을 다수 펴냈다. 이 외에도 한시, 차 문화,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는 글을 쓰는 등 주로 옛것을 빌어 오늘을 말하는 데 능하다. 옛 말의 의미깊음을 모르는 이 없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것조차 쉽지 않건만, 그것을 오늘날의 언어로 재해석함이 어찌 쉬운 일일까...
그렇게 다듬어진 주옥같은 글들은 '1부 마음의 표정', '2부 공부의 칼끝, '3부 진창의 탄식', '4부 통치의 묘방'이라 이름 붙여 각각 분류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이라면 그 안에 담겨진 글들의 제목이 모두 4자, 곧 사자성어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세상만사 희로애락의 모든 일들을 4자의 한자에 함축하여 담아낸다는 것은 왠만한 독서의 내공과 필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어렵잖게 보이는 현학적인 표현들이 저자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 효자손처럼 속시원한 책
이런 류의 인문학고전들이 그렇듯, 책에는 리듬도 강약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에 흥미를 가지고 읽어나가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그나마 김홍도를 비롯한 몇몇 작품과 참고자료들을 화보로 실어 지루함을 달랬다. 본문 또한 2~3페이지 정도로 짧게 구성되어 있고 문장도 길지 않은 편이라 읽기에 편하다. 그래서 가방이나 머리맡에 두고 한 편씩 부담없이 읽는 데 더없이 좋은 책이다. 다양한 이야깃거리도 좋거니와 생활에 적용하는 모습이 거침이 없다. 그래서 속 시원하다.
다만 한자 본문을 인용할 때 한글음이 표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그 의미를 위에 달아놓아 이해하는 데에는 불편함이 없으나 모름지기 언어라는 것이 보는 즐거움 외에도 읽는 맛이 꽤나 쏠쏠하기에 모르는 한자가 나오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 정도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일침」에 담겨진 한문 쯤이야 별 어려움없이 읽어내리라는 믿음때문이었을까?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고의적인 배려라면 어깨 한번 으쓱하고 넘어갈 수 있겠으나 왠지 가슴 한켠 느껴지는 허전함은 쉽사리 지울 수 없다.
* 총평
「일침」은 '손자병법', '논어'와 같은 책들과는 다른 맛이 있다. 인문학적 기반 위에 자유롭게 시대를 아우르며 은근 자기계발서의 모습을 숨겨놓은 듯 하다. 예를 들어 십년은 몰두해야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십년유성',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묘계질서' 등을 보면 마치 한동안 유행했던 자기계발서의 한 대목을 보는 것 같다. 게다가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각 장의 마무리는 묘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최근 유행하는 인문학고전의 한 장르로서 읽기에 부담없으나 많은 깨달음을 주는 한번쯤 다시 읽고픈 그런 책이다.
cal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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