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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7 23:55

일 분 후의 삶 in my study/서평단&이벤트2013.10.27 23:55

  

 

"KBS 2TV [인간의 조건] 추천 도서"

일 분 후의 삶

 

 

 

 

 

"일 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면”

 

생의 고요한 격려를 느껴라

생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이윤기, 최인호가 극찬한 감동의 기록!

 

 

두 번 읽었다. 한 번은 미친 듯이, 한 번은 찬찬히.

죽음을 유예시키는 것은 기도가 아니라 깨어 있는 의식이라는 것을,

비슷한 과거가 있는 나는 이 책에서 다시 확인했다.

- 이윤기(소설가, 순천향대 명예교수)

 

 

 

 

 

 

생의 극한에 직면했던 사람들이 들려주는 생존, 그리고 매순간 우리가 버릴 수 없는 삶의 희망

 

『일 분 후의 삶』은 불시에 닥친 절체절명의 순간,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인생으로 다시금 초대받은 열두 사람의 감동적인 생존 기록을 담은 실제 이야기다. 오랫동안 일간지에서 문학․영화․사건 기자 등으로 일하며 세상의 연결고리 역할을 맡아온 작가가 기자 시절 간절하게 쓰고 싶었던 테마를 처음으로 꺼내놓은 첫 번째 논픽션 작품이다.

열두 명의 생존자들은 공무원, 고속버스 운전기사, 신인 프로복서, 실습 항해사, 보험 세일즈맨, 건설 기사, 등반가 등 평범한 풀잎, 소박한 들꽃 같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7천 미터 높이의 날카로운 설벽을 거슬러 오르는 과정에서, 망망대해에 홀로 빠지면서, 암흑의 지하 미로에 갇히면서, 자신이 탄 비행기가 추락하는 걸 알게 되면서 난데없이 생의 극한에 닿게 된다. 역설적으로 이 때 그들은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자신의 진정한 삶과 예리하게 마주하게 된다. 미국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 현대적 고전 『신화의 힘』에서 가장 강조한 대목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게 아니다. 살아 있음을 진정으로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라는 통찰에 가장 정확하게 맞물린 경험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극적인 경험의 순간 마침내 내면의 간절한 소망을 듣는다. “일 분 후에도 내가 여전히 살아 있을 수만 있다면.” 고군분투 끝에 생존의 위기로부터 벗어난 그들이 공통적으로 깨달았던 것은 평범하면서도 따스한 것이었다. “캄캄하게 흘러가는 그 모진 시간 속에서도 삶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었다. 그 고요한 격려를 느꼈기에 일 분 후의 삶을 염원할 수 있었다.”

이들 생존자의 삶을 향한 강렬한 의지와 감동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치열한 생의 감각과 아름다움, 존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거푸집 속에서 치밀하고도 철저한 사실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낸 열두 편의 논픽션

 

열두 편의 특별하고도 감동적인 사연들을 취재하기 위해 작가는 오래 전부터 이번 책의 주제에 걸맞은 사례들을 수집해왔다. 갑판에서 인도양에 홀로 추락했다가 거북이의 조력으로 구사회생한 임강룡 씨의 기적 같은 이야기는 작가가 군에서 제대했던 1990년 2월 경이롭게 읽었던 지방 신문의 단신 기사에서 시작됐으며, 친구를 구하려고 얼음판 위를 달려갔다가 익사한 후 기억상실증과 함께 살아난 이경섭 씨의 이야기는 작가가 지난해 우연히 만난 공군 항공우주의료원장 정기영 대령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이후 작가는 ‘오직 기자 출신만이 할 수 있는’ 취재력을 동원해서 강원도 진부의 눈 쌓인 계곡에서 바람 찬 남해 칠천도의 바다 마을까지 전국 곳곳에 산재한 극적인 생존자들의 거주지를 파악하고, 직접 만나 ‘아주 사적인 인생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고단하고 힘든 여행을 해야 했다. 생존자들이 생사가 엇갈리는 절박함 속에 느꼈던 세심한 감정들, 팽팽한 긴장감을 최대한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수십 차례의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또한 대면 인터뷰 이후에도 각 단편 논픽션의 주제를 강화하고, 장면의 밀도를 높이기 위해 후속 인터뷰와 전화 인터뷰를 거쳤으며, 최종적으로 완성한 원고들을 생존자 당사자들에게 발송해서 마지막 검토를 함께 했다.

이 과정에서 그 위기의 순간에 해수면 위로 떠오른 안전화의 색깔, 서울 성수대교에서 한강으로 추락한 직후 10초 사이에 느낀 심경, 위험한 빙벽의 틈(크레바스)으로 내려가 하룻밤 잠잘 테라스를 파낼 때 낙빙이 추락하던 소리, 학교 조리실의 은회색 알루미늄문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디테일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작가는 그 단순 작업 과정이 몹시 힘든데다, 생존자들의 기억의 한계를 최대치로 끌어올려야 하는 일 때문에 “차라리 소설처럼 지어 쓸 수 있었으면”하고 몇 번씩 자탄하곤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 분 후의 삶』은 마치 단편소설집과 같은 얼개와 스타일로 쓰여지고,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 같은 문학과 논픽션의 만남은 해외에서는 미국 작가 존 배런트(『선악의 정원』) 같은 이들에게서 볼 수 있으며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이다. 이러한 점에 대해 소설가 최인호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찬연하고 감동적인 기록이다. 저널리스트인 작가가 발굴해낸 삶과 생존의 신비가

프리즘처럼 빛난다. 단색화보인 우리 문학이 천연색으로 변화할 것 같은 예감이 찾아온다.”

- 최인호(소설가)

 

 

기자 출신다운 철저하고 세심한 사실 확인과 빠른 호흡, 소설가다운 극적인 진행, 생존자의 육성을 담은 단순한 건조체와 곳곳에서 빛을 발하는 유려한 묘사의 배합, 쉬우면서도 사유적인 문장은 우리 독자들에게 여름철 더위를 잊게 해주는 극진한 ‘문학 논픽션’(Literary Nonfiction)’이라는 느낌을 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자, 실항사, 이제는, 얼마 남았나?” 선장님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5마일 남았습니다.”

우리는 언제 생명이 끝나더라도 의무를 다하려고 했던 것 같다. 서로의 불행을 위로해야 한다는. 선장님이 잠시 후 다시 묻자 나는 3마일 남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실 내 대답들은 지어낸 것이었다. 구명정은 오지 않고 있었다. 멀리서 멈춰 있는 상선을 향해 우리 튜브가 아주 조금씩 밀려가고 있을 뿐.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 선장님과 함께 살고 싶다는 내 바람과 진정한 의도는 끝이 난다. 몇 분을 더 살아도 비관하며 살 수는 없었다. 우리 삶에 꽃이 절실하다면 성에에 그려내기라도 해야 했다.

- <성에에 새긴 이름> 중에서

 

 

희미하게, 기력이 희미하게 생겨나려는 때에, 뭔가 단단한 게 배 아래 와닿았다. 곧이어 눈앞을 가로막는 게 보여 무작정 팔로 껴안았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풀려버린 몸이었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있었다. 그런데 내 가슴부터 배까지 단단한 껍질 같은 게 바싹 붙어서 수면 위아래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둥글고, 오각형과 육각형의 무늬. 이게 뭘까. 어느 결엔가 내가 손으로 붙잡고 있는 게 생물처럼 살아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됐다. 다름 아니라 거북이 머리였다. 등이 약간 길고 둥그스름하며 직경이 1미터쯤 됐다. 물 가르는 기운이 세어 보였다. 하지만 나는 거북이의 등과 목을 번갈아 가며 잡고 손에 힘을 풀었다. 나는 거북이 위에 타고 있다기보다 내 나름대로 떠 있으려고 했다. 무게를 덜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얼굴을 자주 돌렸다. 거북이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나는 오른쪽으로, 거북이가 오른쪽으로 돌리면 나는 왼쪽으로 돌렸다. 거북이는 자기 몸에 올라탄 생물이 뭔지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중략) “거북아, 거북아, 어서 가라. 빨리 가야 한다. 그래야 배가 간다.”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거북이는 그렇게 물 위에 떠서 우리를 올려다보다가 천천히 배 앞머리로 헤엄쳐갔다. 그러고는 수면 위로 가만히, 가만히 멀어져갔다. 그럴 수만 있다면 거북이를 오래오래 곁에 두고 싶었다. 평생 보답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헤어지고 있었다. 나와는 알지도 못하는 생물. 아무 대가도 없이 나를 구해주다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잘 살아라, 거북아.’

우리는 은인에게 제대로 보은조차 못한 채 평생을 살아가기도 한다. 거북이 역시 마찬가지다. 하늘의 별이 바다에 고스란히 비치듯이, 삼라만상은 모두 다 연결돼 있다. 우리는 이들 속에 잠시 살다 가는 작은 미물. 그 동안 섬세한 이 자연의 거미줄을 흩트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선한 마음을 다하면 하늘과 바다는 온갖 힘을 다해 우리를 도와준다.

- <나를 방생해준 자연> 중에서

 

 

 

 

저자 권기태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자랐다. 부산진고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쓴 단편 「입대」로 1988년 군 복무 중 ‘대학문학상’을 수상했다. 2006년 첫 장편 『파라다이스 가든』으로 민음사가 주관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13년 반 동안 일간지 기자로 근무했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 발발을 전후해서 전쟁 특파원으로서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바빌, 요르단의 암만에서 일했다.

 

 

차례

 

작가의 말  생(生)은 매순간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성에에 새긴 이름

내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운항 실습이 아니라고. 연습 없이 태어나듯 생존에는 실습이 없다고. 나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채로 몸을 내던졌다. 신체가 허공에 뜬 순간과 그대로 차가운 수면을 뚫던 순간이 구분이 안 됐다. 살아야 했고 급박했다. 몇 분을 더 살아도 비관하며 살 수는 없었다. 우리 삶에 꽃이 절실하다면 성에에 그려내기라도 해야 했다.

 

나를 방생해준 자연

사실 희망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거짓말일 때가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차라리 부질없는 희망을 접어버리는 게 마음의 평정을 가져온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면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선택할 일은 오직 하나다. 그 거짓말이 현실이 되도록 사력을 다하는 것. 사람은 힘이 없을 때 죽는 게 아니다. 가망이 없어서 죽는다.

 

내 마음의 발가락

여기서 돌아갈 수는 없다. 험한 일이 닥쳤다고 인생을 거꾸로 살 수 없는 것처럼. 무릎으로 기어가더라도 정상에 가야 한다. 칼날 능선을 올라가려면 방법은 하나다. 정신을 칼날처럼 세우는 것. 나는 신경을 세울 대로 세워 한 발 한 벌 옮겨갔다. 희미한 바람 한 줄기에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몸이 흔들리는 것이다. 높이 7,000미터 실선 위에서.

 

“저기 캔버스가 있다”

링 바닥은 캔버스라 불린다. 그래, 캔버스다. 화가가 붓질하는 캔버스. 복서가 승부를 겨루는 캔버스. 우리의 승부는 예술이 될 수 있다. 가자, 링으로, 내 인생을 향해. 저기 캔버스가 있다.

 

요나가 고래 뱃속에 들어간 까닭은

요나가 바다에 던져졌지만 곧장 죽지는 않았다. 고래한테 삼켜져서 사흘 밤낮을 캄캄한 뱃속에 갇혀 지냈다. 고래는 그런 후에 요나를 해변에 뱉어낸다. 하나님이 고래를 보냈지만, 요나가 고래 밥이 되라는 게 아니었다. 물에 빠져 죽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의 오른손

우리는 누군가의 손이 되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소매단추를 채워주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의 잃어버린 연을 찾아주고 싶다.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작은 천수관음이 되고 싶다. ……세상을 위해 천 개의 팔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안식

나는 하나님 아래 그 섬세한 고리들로 이어진 다른 존재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했었나. 그들을 위해 내가 살아나야 할 때도 있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살아나리라고 다짐한 사람도 있는 것을. 그 같은 사람들을 지루하게 여기고, 내 일상을 지겨워한 것은 그들과 내 생이 앞으로 항상 내게 머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그러나 내게 남은 생이 이번처럼 이제 하루나 한 시간뿐이라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내 눈앞에서 얼마나 소중하고 선명하게 타들어갈 것인가.

 

태어나 가장 기쁜 악수

10미터, 20미터, 30미터, 나는 올라가는 게 아니라 들어가고 있다. 나를 잊어버리는 몰아의 세계로.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 절대 집중의 세계로. 내면으로 난 이 통로 끝의 세계로. 나는 이런 시간이 좋았다. 그래서 등산을 선택했다.

 

라라야, 안녕

생사는 운명에 달린다. 그 운명이 주는 생존의 기회는 집중한 사람한테만 보이고 준비된 자에게만 주어진다.

 

오전 11시 23분

순전히 행복한 사람과 순전히 불행한 사람은 없다. 행복한 때와 불행한 때가 있을 뿐. 일생에는 행복과 불행이 뒤섞여 있다. 시절에 따라 그 비율이 조금씩 달라질 뿐. 가장 큰 행복은 괴로움이 가장 적을 때, 가장 큰 불행은 기쁨이 가장 적을 때이다.

 

생애 가장 긴 순간

죽음마저 허락할 만큼 마음을 비워버리자 심리적인 시야가 넓어졌다. 착륙하기 위해 아래로만 향하던 시선이 집착없이 온전한 하늘을 대했기 때문이다. 내려가야 한다는 강박을 딛고 도리어 솟구쳐서 조망을 확보했던 것도 그를 도왔다.

 

잃어버린 시계

그것은 아마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나서 듣게 되면, 생의 이 순간이 그 죽음 때문에 훨씬 더 선명해질 거라고. 지금 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분명히 알게 될 거라고. 시시각각 기억의 바깥으로, 과거의 것으로 변색되는 이 한 번뿐인 현재가.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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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alam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