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 my study/Book Review

명작, 눈이 아닌 가슴으로 읽다 - 그림 너머 그대에게(이주향) 리뷰

 명작, 눈이 아닌 가슴으로 읽다 

- 그림 너머 그대에게」 (이주향) -

 

 

'뭉크의 절규 최고가 낙찰!'

 

얼마 전,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Scream)>가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에 낙찰되었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했다. 2012년 5월 2일 뉴욕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불과 12분만에 1억 1,992만 달러, 한화로 약 1,355억원에 낙찰되었다는 기사였다. 이는 이전까지 최고가로 기록되었던 피카소의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이 기록한 최고가(1억 650만 달러)를 뛰어넘는 것이다. 마치 5살짜리 우리 딸아이가 아빠의 놀라는 모습을 크레파스로 찍찍 갈겨 그린 듯한 이 그림이 1,000억원이 훨씬 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절규>(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 1893, 91*×73.5cm,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미술관, 출처: 네이버미술검색)

 

그렇다면 도대체 수천억원을 호가하는 그림 한 장에 담겨진 그림 이상의 의미와 가치는 과연 무엇인가? 그 질문에 좋은 답이 될만한 책 한권이 출간되었다. 바로 이주향 교수의 「그림 너머 그대에게」.

 

「그림 너머 그대에게」(이주향, 2012, 271쪽, 예담)

 

- 작품 속 화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클림트, 샤갈, 모네, 마네, 고흐, 뭉크 등 여러 유명 화가의 작품 48점을 화보를 곁들여 설명한다. 각 그림들은 '1 사랑,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2 생명과 신비의 노래', '3 마음 너머 나를 보다' 등 세 장으로 나누어 각각의 주제에 맞게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분류하지 않아도, 그저 각 작품 하나 하나가 담고 있는 의미들만으로도 그 감동은 충분하다.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작품의 감동을 충분히 전달하는 저자의 필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책이다.

 

그림 너머 그대에게 목차(출처: 인터파크도서검색)

 

책을 읽는 동안 도드라지지 않되 본문 속에서 툭툭 던지듯 내뱉는 한 마디 속에서 저자의 미술에 대한, 문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관심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그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화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그림 구석구석에 감추어진 화가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저자의 의도라 생각되고 이 책을 통해 그것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본다.

 

그림 너머 그대에게 목차(출처: 인터파크도서검색)

 

- 점 하나, 선 하나도 모든 것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저자는 작품 마다 점 하나, 선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각각의 의미를 저자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수 십번, 수 백번 그 작품을 본다한들 발견하기 어려웠을 그런 부분들까지도 섬세하게 그려내고 그 의미를 정확하게 집어낸다. 그래서 그림 하나를 놓고 서너 페이지에 걸쳐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나의 그림에 이토록 많은 감동과 지식을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마치 그림을 그릴 때 화가 옆에 있었던 것처럼, 아니 더 나아가 화가 자신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텍스트를 통해 섬세하게 작품을 다시 그려낸다. 마치 지금 붓을 들고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자신만의 관점에서 그림을 재해석 해낼뿐만 아니라 같은 주제로 그려진 다른 작품들을 나열하면서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예를 들어 <격노한 메데이아>에 대해 쓴 '복수하는 마녀의 신화적 원형'에서는 메데이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저 그림은 외젠 들라크루아의 <격노한 메데이아>입니다. 메데이아는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도 그렸고, 귀스타브 모로도 그렸고, 프레더릭 샌디스도 그렸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은 바로 저 그림입니다."(p.125)

 

<격노한 메데이아>(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 1862, 120×84cm, 루브르박물관, 출처: 네이버미술검색)

 

이러한 표현은 책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또한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그림에 대한 높은 식견을 주저함없이 표현해낸다. 그래서인지 거부감없이 그 지식에 감탄하게 되고 독자로서 나 역시 그것들을 몰래 내 것으로 소화해내려 노력하게 된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힘이라 생각된다.

 

 

- 그림 너머 나에게

사실 그동안 갤러리나 전시회에 많이 가보지는 않았다. 가끔이나마 유명하다는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봐도 그다지 큰 감흥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전에는 그림 하나에 이토록 많은 의미가 있는지 미처 알지 못했기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림이 가지고 있는 그 가치가 무엇인지조차 잘 몰랐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나니 마음 속 깊이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오고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모든 그림들이 저마다의 가치와 감동을 전해주었지만 그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르네 마그리트의 <연인> 이라는 작품이다. 두 남녀가 흰 보자기를 쓰고 키스를 하는 장면이 담긴 그림이다.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느낌, 또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느낌을 던져주는, 내게는 그야말로 충격으로 다가온 그림이었다. 한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단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화가의 표현력과 상상력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게 된다. 그것이 바로 미술이 주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힘이 아니던가...

 

<연인>(르네 마그리트(1898-1967), 1928, 출처: 네이버미술검색)

 

- 아쉬운 것들

어떤 책이나 마찬가지지만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발견했다. 물론 이 부분은 독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눈에, 나의 생각에 아쉬운 것들이다.

 

1. 작품 선택의 신중함

먼저, 몇 개의 그림은 다소 잔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술작품이기에 그 안에서도 의미와 감동을 찾을 수 있지만 아무런 준비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만나는 섬뜩한 그림에 놀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림이라는 것이 사실적인 동시에 화가의 정신세계가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기에 그 표현 자체는 물론 존중하며 문제가 될 것도 없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편집상의 문제다. 얼마든지 다른 좋은 작품들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2. 작품의 배치

중간중간에 보면 이미지가 나오기 전에 해설이 먼저 나온다. 그래서 저자가 감정을 다해 해설을 하고 있는데 그림을 보지 않으니 무슨 이야기인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다가 다시 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쉬어가는 코너'나 관련된 다른 그림들을 삽입하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책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그림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니 그러한 배려가 필요해보인다.

 

그림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오른쪽 페이지부터 설명이 시작된다. 다음 페이지를 보기 전까지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3. 인쇄품질

내가 받은 책만 그런 건진 몰라도 수록된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저자가 설명하는 디테일한 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장 레옹 제롬의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의 경우에는 조각상과 천사 외에 다른 이미지는 거의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훨씬 밝은 색으로 되어 있어서 그림이 눈에 잘 들어왔다. 전체적인 느낌도 중요하지만 선 하나 점 하나조차 중요하게 다루는 저자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부분도 신경써야 할 것이다.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 품질 비교

    

책의 이미지                                        인터넷에 있는 이미지

 

* 총평

 

책장을 넘길 수록 조금씩 그림을 보는 눈이 달라짐을 느끼게 되었다. 워낙 유명해서 그냥 보고 지나쳤던 그림들도 이제는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그동안 놓쳤던 화가의 대화에 동참하게 되었다. 물론 전에 알지 못했던 작품들을 만나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에 대한 식견도 한 순간에 높아진 느낌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문화생활의 폭을 한층 넓게 해주었고 지식의 깊이도 더해준 책이다. 그림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물론, 평소 큰 관심이 없던 사람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 그림 너머 그대에게이다.

 

 

* 놓치기 아쉬운 문장들

 

왕관을 써보셨습니까? 왕관을 즐겨보셨습니까? 꼭 정치 권력만이 왕관은 아닐 겁니다. 오아관이란 인생을 빛나게 하는 내 인생의 자랑거리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저 그림은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그 뒤에 숨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되기 힘든 '나'에게 묻습니다. 네가 자랑스러워하는 왕관은 어쩌면 너의 덫인지도 모르고, 네가 왕관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어쩌면 너를 너 되게 하지 못하는 겉치레일지도 모른다고. - p.37

 

마음이 가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곳은 마음이 한바탕 놀아야 할 곳입니다. 마음 가는 곳이 위험하다고 가지 않으면 생은 안전하나 지지부진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내 운명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곳, 그리하여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그곳, 그곳이 마음 가는 곳입니다. - p.49

 

동굴의 시간을 가져보셨습니까? 그 시간은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이 아니라 접는 시간입니다. 행동하는 시간이 아니라 머무는, 혹은 미친 듯 떠도는 시간이 아니라 참회하는 시간입니다. 그 동굴의 시간이야말로 자신을 동굴로 숨어들게 했던 두려움으로부터 걸어 나올 수 있는 힘을 비축케 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 p.110

 

우리 안에는 우리가 이 생에서 키워내야 할 우리의 소중한 꿈, 새로운 태양이 수태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우연히 던져진 왜소한 존재가 아니라 우주와 자연과 역사가 마침내 낳은 세계의 주인공인 겁니다. - p.154

 

아버지는 굴종을 요구하는 지배자여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자기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가 갖추어야 할 가장 큰 능력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기다려주는 자입니다. 저 탕자의 아버지는 바로 긍정적인 아버지의 원형입니다. - p.219

 

 

* 오타리스트

 

p.129 아래에서 3째줄: '혐오감 때문이지'는 문맥상 '혐오감 때문인지'가 더 나을 듯

p.250 위에서 4째줄: '그림까지 그릴 생각을'은 '그림까지 그릴 생각은'으로 바꾸어야

 

 

calam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