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여행을 위한 네비게이터
- 「인문학공부법」(안상헌) 리뷰 -
최근 인문학 열풍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소설류와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가 주를 이루었던 몇 년전에 비해 인문학을 소개하고 공부하려는 이들의 가이드 역할을 자처하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인문학 입문자들에게 제대로 된 네비게이터 역할을 할만한 책 한권이 나왔다. '독서 전도사가 콕 찍어주는 인문학 공부포인트', 「인문학공부법」이 바로 그 책이다.
「인문학공부법」(안상헌, 북포스, 328쪽, 2012)
* 모든 장르를 품에 안은 입문서
사람들에게 편견이 생기면 그것을 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인문학이라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많은 이들에게 있어서 인문학서를 읽는다고 하면 두려움과 한숨, 그리고 어렵다는 편견부터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한손으로 잡기조차 버거운 그 두께와 돋보기를 써야만 할 것같은 깨알같은 글씨때문(이것조차 편견일 수 있지만)이다. 하지만 이 책 「인문학공부법」은 인문학에 대한 이런 편견과 두려움을 일시에 거두어준다.
가장 부담스러운 철학부터 시작해서 공자, 노자 등의 동양사상, 소설과 시, 역사와 신화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모든 장르를 품에 안고 간다. 인문학에서도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있을 수도 있기에 저자는 거의 전 분야를 다루는 배려를 보이고 있다. 더군다나 그러한 부분들이 오히려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는 관심의 폭을 넓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우선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부터가 그랬다.
* 독서전도사의 인문학에 대한 기막힌 설파
저자는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를 통한 철학적 개념의 이해,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에서 미스 해비셤을 비롯한 캐릭터를 발견해가는 재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서 밋밋하지만 섬세한 묘사가 가득 담긴 문장을 느끼는 방법, 시를 읽으면서 역설의 통쾌함을 맛보라고 권유한다. 익히 알고 있던 분야는 물론이거니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인문학의 여러 장르를 소개하며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은, 그 안에 고이 담긴 참 맛을 보라고 유혹한다.
이 모든 것은 독서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수많은 강의를 하고 책을 펴낸 저자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들이다. 이 책을 통해 독서전도사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도가사상을 공부한다면 <도덕경>, <열자>, <장자>를 차례로 함께 읽는 것이 좋다'는 말이나 '인문학의 목적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다. 삶 자체를 얻는 것이다.'는 내용은 인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나올 수 없는 말들이다.
* 초보입문자들에게 딱인 책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는 인문학 입문서들과 비교해보니 이 책이 가장 실용적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모든 인문학 입문서를 100% 다 읽어본 것도 아니고 독자의 입장에서 저마다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위에 누군가가 인문학을 만나고 싶어할 때 주저함없이 추천할 수 있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저자의 책은 「이건희의 서재」 이후 두번째인데 두 권 모두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 책에 관한 한 저자의 안내를 받는 것은 안전한 선택일 것이다.
나 역시 인문학은 여전히 시작단계에 있어서 「논어」, 「맹자」 등 동양사상에 대한 책들을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별 관심이 없었던 소설과 신화에 대한 관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맛보기로 소개된 책의 내용들은 인문학을 새롭게 대면하게 한다. 적어도 책을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리고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한 마디로 강추한다.
* 총평
책 내용에 보면 저자가 소설에 재미를 붙이면서 사들여 읽기 시작한 책이 책장 가득 천여 권이라고 한다. 다른 장르의 책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무엇보다 인문학 대부분의 장르를 폭넑게 소화하는 동시에 영화와 음악 등을 절묘하게 섞어내는 저자의 솜씨가 놀랍다. 그 모든 과정에서 책과 문학에 대한 저자의 깊이와 넓이가 느껴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떤 책을 이야기 하더라도 툭툭 튀어나오는 연관된 도서들의 이름들은 폭넓은 독서량이 아니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저자만의 숨겨진 내공일 것이다. 책에 빼곡하게 매달려있는 포스트잇의 숫자들이 이 책에 대한 나의 만족도를 나타내주는 차트처럼 보인다. 이러한 책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놓치기 아쉬운 문장들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당장 밥이 나오거나 돈이 나오지는 않는다. 지금껏 경시된 데에는 그런 이유도 한몫했다. 하지만 인문학은 밥이나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남겨준다.먼저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자기성찰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도록 해준다. 그와 함께 무엇을 위해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도록 돕는다. 이것이 밥이나 돈보다 귀중한 인문학의 가치다. - p.23
책을 읽을 때에도 자신이 왜 이 책을 읽는지 이유를 확실히 알 때 더 잘 읽을 수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유를 가지고 해야 한다. 책을 읽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발견하려면 사전학습을 하는 것이 좋다. - p.32
책을 읽는 자기 목적을 가질 것, 쉬운 책을 먼저 읽을 것, 좋아하는 분야를 먼저 공부할 것, 이것이 인문학적 체력을 키우는 작은 요령이다. - p.34
철학자들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게 생각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새로운 관점을 이끌어냈고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 바로 철학의 힘이다. - pp.94~95
인문학의 목적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다. 삶 자체를 얻는 것이다. - p.133
자유에는 여러 차원이 있을 수 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가 하면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도 있다. - p.146
영웅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타고난 능력이나 재주가 영웅을 만들 수는 없다. 많은 노력이나 특별한 훈련도 영웅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런 것들은 영웅이 겪는 일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역사는 특정 인물에게 어떤 일을 맡을 것을 권유하고 그 역할의 짐을 지운다. 이때 그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역사 속으로 들어가면 영웅이 된다. 반면 역할을 회피하고 도망가면 대중으로 남겨진다. - p.249
왜 역사 공부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다"라는 에드워드 핼릿 카의 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현재를 발견하는 것, 그래서 미래를 유익하게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p.253
좋은 독서가는 이야기에 담겨 있는 삶의 메시지를 자신의 삶으로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다. - p.281
훌륭한 독서가는 준비된 독서가다. 텍스트가 주는 변용의 힘을 얻을 준비가 된 사람은 무엇을 읽든 자신의 이야기처럼 읽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필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현실로 내려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나간다. 그러자면 이야기를 자기 삶에 대입해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발견한 메시지를 일상을 통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 p.287
열심히 노력해서 아무것도 얻지 않도록 하라. - p.303
개미나 벌이나 다른 동물은 그들의 존재가 의미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는다. 존재 의미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람의 특권이다. 사람은 그런 의미를 찾을 뿐 아니라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무엇보다 그것은 진실함의 표시다. - p.327
* 오타리스트
한참을 몰입해서 읽는 중에 뜬금없는 오탈자가 보인다. 그냥 넘어가기 쉬운 부분인데 운좋게 눈에 띄었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 그나마 오탈자가 적은 편이기는 하지만 내용이 좋은만큼 아쉬움이 남는다.
p.143 아래에서 6째줄: '조건이 되는 일어나고' → '조건이 되면 일어나고'
p.202 아래에서 8째줄: '훌륭했다면' → '훌륭했다며'
p.270 위에서 7째줄: '마음도 긴다' → '마음도 생긴다'
인문학 여행을 위한 네비게이터 - 「인문학공부법」(안상헌) 리뷰
cal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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