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에 대한 편견을 깨다
- 「고잉솔로 싱글턴이 온다」(에릭 클라이넨버그) 리뷰 -
「고잉솔로 싱글턴이온다」(에릭 클라이넨버그, 더퀘스트, 356쪽, 2013)
국내 최고의 병원에 팀장으로 근무하는 여자 선배 L.
그녀는 국내 최고의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 현재 이 병원의 1급의 자리에 올라있다. 원룸에서 혼자 살며 주말이면 오페라와 발레 등 수십만원 짜리 공연을 보며 후배들에게도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산다.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정신없는 병원일을 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 새 지금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후회없이 하루하루를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게 보내고 있다.
주변에 이렇게 자신의 일에 몰두하며 살다가 40을 넘긴 사람들이 적지 않다. 결혼을 기피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려고 굳이 애를 쓰지도 않는다. 그 가운데 반은 가족과 살고 반은 혼자 산다. 그 누구의 간섭도 원하지 않고 혼자의 삶이 편하다고 한다. 주변에 결혼 한 사람들을 보면 부부간의 싸움, 고부간의 갈등, 자녀양육으로 인한 고민 등 너무나도 많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습만 보이는 것 같아 애써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다. 이렇게 혼자 사는 게 좋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혼자 사는 것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좋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외로움을 못 견디고 우울증에 걸리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갈등이 있을 때도 있지만 서로 사랑하며 자식을 키우는 재미 속에 인생의 참 즐거움을 발견하게 된다고 믿는 것이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잉솔로 싱글턴이온다」는 그 모든 것이 편견일 수도 있다는 걸 너무나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뉴스를 보다보면 의아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언제는 커피가 몸에 좋다는 연구결과가 나와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커피를 마시는가 하면, 몸에 안 좋다는 실험결과가 나오면 마치 독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커피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런 사례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별로 변하지 않는 진리처럼 여겨왔던 싱글의 삶에 대해 보기좋게 역공을 날리는 책이 나온 것이다.
책 내용을 보면 보란듯이 지금까지의 편견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를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이미 결혼한 나조차도 마치 '그럼 결혼하지 말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다보니 책 자체가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논문을 읽는 듯 수많은 참고자료와 데이터들이 책 초반부터 쏟아져 나온다. 그러다보니 읽는 것이 다소 지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결혼을 하지 않은 싱글이라면, 아니 이미 결혼을 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미래를 생각하며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책이다.
하지만 전반적인 연구대상이 미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시아권에 대한 내용도 들어 있지만 주로 언급되는 사례와 배경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문화이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급속도로 서구화되어 가고 있다지만 분명 생활패턴과 그 근간을 이루는 중심사상은 여전히 동양적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내용들을 그대로 오늘날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학생들은 거의 의무적으로 기숙사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 물론 자취나 하숙을 하게 된다면 비슷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화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리고 미국인들은 대학입학과 더불어 학비는 물론 모든 생활을 거의 본인이 책임진다. 대학학자금도 융자를 받은 후 졸업하고 취업해서 갚는 경우가 많다. 부모에 주로 의존하는 한국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이것은 대표적인 예일 뿐, 책 전체적으로 흐르는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이 공감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게다가 부자연스러운 번역 또한 책에 대한 집중을 방해할 때가 종종 있다.
또 한가지. 이 책에서 말하는 싱글은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기반이 확실한 사람들로 잡고 있다. 혼자 지내면서 살 집이 있고 먹고살기에 걱정없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동호회 활동도 자유롭고 자신이 하고 싶은 문화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학비와 용돈조차 제대로 벌기 힘든 소위 말하는 88만원 세대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는 다소 환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률이 세계정상급을 차지하고 있고 만혼이 흔해진 요즘 1인가구의 시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 거부할 수 없는 현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나침반이 되어 줄 수 있는 책이다. 늘 그렇듯이 그러한 문화적인 갭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책, 「고잉솔로 싱글턴이온다」는 편안하게 누워서 눈물 몇 방울 흘릴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싱글에 관한 리포트나 논문을 준비할 때 활용할 수 있을만큼 학적인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만 달랑 꺼내서 볼 것이 아니라 이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미래를 앞서나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정독해야 할 책이다. 그 대상 또한 대학생부터 50대, 아니 그 이상의 세대에서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싱글에 대한 편견을 깨다 - 「고잉솔로 싱글턴이 온다」(에릭 클라이넨버그) 리뷰
cal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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