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다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조지프 핼리넌) 리뷰 -
아침부터 바빴다. 대안학교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하는 첫 날. 얼마간 자고 와야 하기에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았다. 나름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어제 밤에 포스트잇을 이용해 가져갈 리스트를 작성해 놓고 체크했건만 도착해보니 결국 중요한 몇 가지를 놓고 왔다. 나름 완벽주의를 자랑하는 나이기에 이런 현실들이 더욱 스트레스가 된다. 언제쯤이나 실수하지 않고 완벽하게 준비물을 챙겨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위안이 되는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조지프 핼리넌, 김광수 역, 315쪽, 문학동네)
* 번역본답지 않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책
참 많은 실수 가운데 살아가는 나이기에 제목만으로도 읽고싶은 책이었다. 장 구분없이 총 13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머리말과 맺음말조차도 본문인 것처럼 되어있어서 실제로는 15개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안에서 이 책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들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다만 중간중간 제목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내가, 아니 우리 모두가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조지프 핼리넌(Joseph T.Hallinan).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고가 및 작가를 역임했으며 지역신문 <인디애나 폴리스 스타>의 기자로 근무하던 1991년, 추적보도 부문 퓰리처 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런만큼 생생한 이야기들이 저자의 주장을 탄탄하게 지지해준다. 심지어 지극히 미국적인 문화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대다수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내가 공감하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글이 잘 다듬어졌고 번역 또한 자연스러운 편이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근데 정말 평균 이상인데... * 실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를 발견하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바로 나다. 약속을 어기지 않고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과 PC를 자유롭게 활용할 줄 알고 주변에 널리 가르쳐 줄 실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혀 실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행인 것은 실수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고 나도 인간이기에 실수하는 것이 나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 기억하는 것과 실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다행스러운 사실들과 희망들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물론 실수하는 것을 잘 한다고 말할 수 없고 실수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라고 하는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가 왜 실수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 그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고 읽었고 그 해결방법들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당장 실수가 줄어들진 않았다. 그러나 실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그래서 조금 더 여유로워질 수 있었고 그로인해 실수가 조금씩 줄어들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두 테이블이 정말 같은 크기라고? 못 믿겠어서 자로 재보았는데 정말 같은 크기다ㅠㅠ
* 착각인가, 실수인가
이 책을 읽다보니 얼마 전에 포스팅 한 책 「가끔은 제정신」(리뷰 보러가기 클릭)이 자꾸 생각났다. '가끔은 제정신'이라고 하면' 자주 제정신이 아니다'라는 의미일 수 있다. 그만큼 우리가 수없이 많은 착각과 실수 속에 살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실수하지 않는다'는 착각이 더 큰 실수를 낳는다. '나는 제대로 보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지극히 평범한 내가 아주 대단한 능력이 잠재되어 있는 탁월한 인간으로 둔갑한다.
이런 식으로 우습지도 않은 많은 실수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면서 실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운이 없었고 다른 사람의 방해 탓이라고 자신의 부족함을 떠넘긴다. 이렇듯 착각이 실수를 만든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와 「가끔은 제정신」 이 두 책은 다른 듯 서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지금의 내 모습을 자꾸 확인시켜주려는 듯, 내 삶을 돌아보게 한다.
내용은 다르지만 맥락을 같이 하는 두 책
* 총평
책이 삶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그 세계를 마음껏 즐기게 해준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널리스트가 20년에 걸쳐 밝혀낸 방법이니 신뢰가 간다. 남의 이야기를 살짝 가져다 끼운 것이 아니라 발로 뛰며 직접 체험한 이야기라 그 느낌이 생생하다. 비록 머나 먼 남의 나라 이야기일지라도 와 닿는 느낌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하지만 심리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주제를 저널리스트의 경험과 관점으로만 다루다보니 전문성과 과학적 근거가 다소 빈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연구자료가 제시되기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이다. 「가끔은 제정신」이 상대적으로 더 끌리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닌가싶다. 반면에 그건 말 그대로 아쉬움일 뿐, '실수'라는 주제를 다루기에는 이 정도 깊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과학적 실험과 근거, 연구자료들이 어쩌면 더 큰 착각에 빠지게 하고 실수를 맛보게 할 수도 있기때문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내 진실에 두려움마저 느껴진다
* 놓치기 아쉬운 문장들
제대로 ‘보는 것’조차도 어려운 일이다. 얼마나 어려운지 인식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다. 늘 무언가를 바라보며 생활해온 우리에게는 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저 눈을 감았다 뜨면 세상이 보인다. 그러나 맹인으로 살아오다가 시력을 얻은 사람들에게는 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운 숙제다. - p.37
멀티태스킹은 여전히 현대사회의 맹목적인 신화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우리의 주의가 짧은 시간에 여러 업무로 왔다 갔다 할 뿐이다. 컴퓨터도 다를 바 없다. 컴퓨터도 1초에 수천 번씩 여러 프로세스를 처리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멀티태스킹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짧은 시간에 워낙 빨리 오고 가기 때문에 동시에 처리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p.119
사건을 구성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눈으로 사건을 구성하기도 하지만 귀를 이용할 때도 적지 않다. 몇 년 전, 영국의 연구진이 식품점에서 음악과 와인 선택 사이의 관련성을 연구했다. 연구진은 와인 코너의 맨 위 진열대에 테이프플레이어를 설치하고, 아래 선반에는 가격대와 특징이 비슷한 프랑스산 와인과 독일산 와인을 네 개씩 진열했다.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 음악을 하루씩 번갈아서 틀었다. 그 결과 프랑스 음악을 튼 날은 프랑스 와인의 판매량이 독일 와인을 압도했다. 반면에 독일 음악을 튼 날은 판매량이 그 반대였다(식품점 와인 코너에서는 보통 프랑스 음악을 트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p.138
타인의 심리를 유도할 때, 앵커링(anchoring)이라고 불리는 연관 효과도 한몫을 한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 사람들은 누군가가 처음으로 제시한 수치를 - 설령 그 수치가 얼토당토않더라도 - 준거로 삼는 경향이 있다(앵커링 효과란 누군가가 먼저 제시한 수치를 준거(準據)로 삼는 현상을 말한다). -p.150
앞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일이 있을 때는 이것부터 생각하자. ‘잘못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생각은 당신을 염세주의자나 패배자처럼 보이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았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버리지 않으면 그 어려움에서 한시바삐 벗어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긍정적인 생각에도 한계는 있다. 특히 경계할 것은, 긍정적인 사고에 치우치면 우리의 생각 이면에 존재하는 함정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이다. -p.303
내 실수들, 'delete'할 수 있을까
* 오타리스트
p.290 위에서 7째줄: 흐름상 '홈 디포' 뒤에 'Home Depot'를 삽입해야 할 듯
p.294 위에서 11째줄: '좋을때'를 '좋을 때'로
cal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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