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꾼 실수, 실수가 만든 역사
-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빌 포셋) 리뷰 -
:: 과거의 실수에서 느끼는 즐거움
이 책의 저자 빌 포셋의 소개를 보면 '대학 교수이자 작가이며, 롤플레잉 게임 회사의 대표'라고 되어 있다.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소개에서 '전쟁이나 전투의 역사에서 나쁜 결정을 내린 사례를 찾아 수십 권의 책을 집필했다'는 말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런 저자의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이 이 책 곳곳에 베어 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각 역사적 실수(사건)들은 제법 흥미진진하다.
머리말에 적혀있는 것처럼 이 책의 요지는 '전쟁에서든 침실에서든 과거의 엄청난 실수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데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즐거움을 제대로 전달해준다. 그러한 엄청난 실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는 '과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질렀는데도 우리는 살아있고 심지어 번영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 3천년 역사 속에 감춰진 실수들
'2. 시대를 앞서간 남자 - 도를 넘어선 파라오 BC 1390년'을 시작으로 '100.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 - 과거의 악몽을 재연하다 2008년'에 이르기까지 연대별로 굵직한 역사의 실수들을 다루고 있다. 다만 '1. 야망 - 서구에서 저지른 실수 BC 499년'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문화를 창조하고 유지해온 사건들의 시초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연대순에서 벗어나 첫 번째로 다루었다.
천년을 앞서간 파라오 아크헤나텐의 이야기, 위대한 국가와 제국에서 되풀이되는 '대금을 지불하기 위해 인플레이션을 활용한 것', 콜럼버스의 '결과가 좋았던 실수', 세상을 보다 나은 쪽으로 변화시킨 실수들의 대표 사례인 페니실린,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초토화된 뉴올리언즈의 이야기까지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도 있었지만 몰랐던 내용들도 많아서 637페이지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아쉬운 점들
:: 제목 설정의 아쉬움
독자들마다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책을 좀 읽는다 하는 사람이라면 목차와 머리말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목차를 보면서 느낀 것은 제목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난해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93. 불필요한 위험 - 워터게이트 사건'은 한 눈에 봐도 어떤 내용인지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86. 언어유희 -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결과'는 궁금해지기는 하지만 어떤 사건, 어떤 역사적 실수를 말하고자 하는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52. 실패, 그리고 패닉 -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제목처럼 보인다. 게다가 중간에 보면 두 개의 역사적 실수를 하나로 묶은 부분(5&6, 45&46)도 보인다. 하나로 이어진 이야기 속에서 두 가지의 실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형식을 취한 것 같다. 하지만 그냥 독립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읽기에 더 좋은 것 같다. 전체적인 흐름을 볼 때, '제목 - 사건' 형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훨씬 보기에 좋지 않았을까.
:: 책 구성의 아쉬움
100가지 역사적 실수들을 연도별로 소개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숫자들이 이어지다보니 다소 지친다. 자기계발서와 같은 도서에서 'part'나 '장' 등으로 나누는 이유는 내용 구성상의 목적도 있지만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측면도 있다. 물론 분량도 많고 내용도 단편적이라 쉬엄쉬엄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읽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1. 야망'에서부터 '100.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읽어나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으로 나누거나 고대, 중세, 근대, 현대 등으로 분류해서 소개했다면 어땠을까? 이 책은 자기계발서로써 어떤 방법이나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지식과 자료를 제공하는 측면이 강하다. 그 말은 곧 나중에 다시 이 책을 펼쳐 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볼 때 찾기 쉽도록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이 여러모로 독자에게 유익하지 않았을까.
:: 자료 이미지의 아쉬움
얼마 전 한국전쟁 당시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컬러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었다. 그동안 흐릿한 흑백사진만 돌고 돌았던 터라 마치 영화세트를 보는 것처럼 현장의 생생함을 잘 전달해주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역사를 말할 때 스토리 전달도 좋지만 사진자료들이 있다면 훨신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이 책에는 많은 사진들이 수록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몇 개의 일러스트(그것도 흑백에 다소 조잡한 듯한) 외에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중간중간 보이는 일러스트, 예를 들어 p.222의 '콘스탄티노플 방어'는 어떤 지역을 의미하는 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p.131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로마 제국 분할 계획'은 어디가 육지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도저히 분간이 가질 않는다. 전반적으로 책에 삽입된 일러스트는 통일감도 없을 뿐더러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조금만 신경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놓치기 아쉬운 문장들
- 로마 제국 역사상 최악의 병력 손실은 단 한 명의 판단력 부족에서 비롯되었다. _p.105 - 역사를 바꾸기도 하는 실수는 어리석음이나 그릇된 판단이 아니라 간혹 '무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의도와 무지의 차이가 그 결과인 재앙을 경감해주는 것은 아니다. _p.110 - "역사로부터 학습할 수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또 다시 반복하게 된다." _p.637
마치며
그 당시에는 사실이고 진실이라 믿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 거짓으로 드러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그것이 또한 한 두명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라면서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 보면 그 모든 것이 결국엔 역사라는 퍼즐을 맞추어 가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또한 깨닫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라는 순간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평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이라는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은 중요한 잣대가 되어준다. 이것은 인류 전체의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개인의 인생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남은 인생을 보다 가치 있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보물인 것이다.
역사를 바꾼 실수, 실수가 만든 역사 - 「역사를 바꾼 100가지 실수」(빌 포셋) 리뷰
cala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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